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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상록수림 짙은 녹음 속 뿜어내는 시원한 물줄기

(139)천제연폭포
칠선녀 목욕하던 전설, 천제연
제주의 다양한 역사문화 품어
수려한 경관 담긴 탐라순력도와
유배 온 임관주 마애명 남아있어

 

▲옥황상제도 반한 천제연폭포

한여름 천제연폭포 일대에는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상록수림의 짙은 그늘이 도처에 드리우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천제연 1단폭포 주변 암벽에 새긴 유배인 임관주의 마애명과 1단폭포 주변에서 솟아나는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던 역사적 흔적인 도수로(導水路) 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천제연(天帝淵)이란 지명은 오랜 옛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일곱 선녀가 한밤중에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목욕과 빨래를 하던 연못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러한 전설을 담아 최근 난대림이 들어찬 아름다운 계곡을 이어주는 칠선녀 다리인 ‘선임교’와 ‘천제루’라는 2층 한옥 정자가 시설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또한, 천제연폭포 일대는 무태장어 서식지(천연기념물 제27호)이면서, 제주도에서도 가장 희귀한 솔잎난이 자생하는 난대림지대(제378호)로 보호되고 있는 국가지정 문화재 보호구역이자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제주에서는 서귀포 근교의 ‘엉또폭포’처럼, 비가 많이 와야 폭포수를 볼 수 있는 폭포를 일명 ‘비와사폭포’라 한다. 천제연 1단폭포 역시 비와사 폭포이다. 그럼에도 천제연 2단과 3단폭포에는 늘 폭포수가 흐른다. 바로 1단폭포 주변 도처에서 발원한 용천수가 2·3단 폭포수가 되어 흐르기 때문이다.
 

 

1단폭포 암벽 주변으로 내려가면 천제연 연못 주변에서 솟아 나오는 용천수를 직접 볼 수도 있고, 선녀 하강의 전설을 되새기며 연못물에 손을 담그면 정기와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관광단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천제연폭포와 베릿네오름’에는 중문색달해변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 등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다음에 소개되는 제주의 다양한 역사문화가 숨어 있다.
 

 

▲천제연폭포에서의 활쏘기 그림인 탐라순력도 현폭사후(懸瀑射帿)

1702년 이형상 목사가 편찬한 탐라순력도 41개의 화폭에는 천제연 2단폭포에서 활을 쏘는 모습을 그린 ‘현폭사후’란 그림이 있다. 현폭사후 그림에는 천제연폭포가 있는 중문 지역이 ‘지경대정(之竟大靜)’임을 표시하는 글자도 보인다. 대정현은 시대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으나, 대략 지금의 서귀포시 법환동과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사이의 지역을 관장했다.

천제연폭포를 상폭(上瀑)과 하폭(下瀑)으로 구분하고 있는 현폭사후는 폭포수를 배경으로 활을 쏘는 이 지역 선비들의 호연지기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또한, 현폭사후에 그려진 폭포수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은 당시의 난대림이 우거진 천제연폭포의 자연경관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림에는 또한 폭포 좌우에 동여맨 줄을 이용해 짚이나 풀로 만든 허수아비 인형인 추인(芻人)이 좌우로 이동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추인은 주로 기마 병정들이 화살을 쏘는 표적으로 이용되던 과녁이다.

현폭사후 그림에서는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을 상대편이 추인에 꽂으면, 다른 쪽에서는 매달린 줄을 당겨 추인에 꽂힌 화살을 건네받는 형식으로 활쏘기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탐라순력도 41화폭 중에는 제주도 3대 폭포 중 하나인 천제연폭포를 배경으로 활 쏘는 장면인 천연사후(天淵射帿)와 정방폭포를 탐승하는 정방탐승(正方探勝), 그리고 이곳과 가까운 용흥동 염돈 지경의 고둔과원(羔屯果園)에서 왕자구지(王子舊地)를 탐방하는 그림인 고원방고(羔園訪古)도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현재 탐라순력도를 제주도 최초의 국보로 신청 중이다.

▲유배인 임관주의 시 ‘추인(芻人)’과 마애명

자연이 빚어낸 절경이 즐비한 천제연 공원에서 바위는 그냥 흔한 볼거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천제연 1단폭포에 내려서서 검푸른 연못 주변에 형성된 조면암 병풍바위를 만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라면 천제연폭포와 병풍바위의 어울림을 보는 순간 시심(詩心)도 절로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천제연 1단폭포 서북 벽에는 유배인 임관주가 2단폭포 주변에서 이곳 선비들이 활을 쏘는 모습을 보고 지은 ‘추인’이라는 시가 마애명(磨崖銘)으로 남아있다. 정 6품인 정언(正言)으로 벼슬살이하던 임관주는 언론의 중요성과 관원들의 비리 등 10여 가지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여, 1767년 안덕면 창천리에 유배되었다. 유배 두 달이 지나자 대신들이 바른말을 하는 관리를 섬에 계속하여 가둘 수 없다고 건의하자, 두 달 만에 영조는 특별히 임관주를 석방하였다. 유배에서 벗어난 임관주는 창고천·산방산·천제연·한라산 등지를 돌아보며 여러 시를 남겼다. 임관주가 서각한 추인(芻人)이란 시가 쓰인 바위가 낙반으로 소실될 것을 염려한 지역단체에서는, 원문과 한글 해석을 돌기둥에 새겨 4·3위령비 주변 광장에 전시하고 있다. 다음은 임관주가 암각한 추인이란 시의 원문과 한글 해석이다.

“天池淵開大瀑流(하늘의 깊은 연못이 열려 큰 폭포 흐르고) / 移來叢石壁深湫(돌기둥들이 즐비한 절벽에 깊은 못이 되었네.) / 空中負箭芻人步(공중에선 화살 진 허수아비 추인이 줄 타고 걸어가니) / 第一奇觀此射侯(가장 기이한 볼거리는 이곳에서의 화살 쏘기라네.)”

이어 그는 한라산으로 올라가 바다를 보며 지은 시를 또한 마애명으로 남겼다.

“茫茫滄海潤(망망한 창해 드넓은 곳에) / 一峯漢拏浮(한라 봉우리 떠 있구나.) / 白鹿仙人待(하얀 사슴을 탄 신선을 기다리는 데) / 今登上上頭(난 오늘에야 한라 정상에 오르는구나.)

올곧은 상소를 올린 죄로 두 번이나 유배형에 처해졌던 임관주의 시는 거침이 없다. 제주에 부임했던 지방관들과 유배인들의 시는 태생부터 다른 것 같다. 지방관인 경우, 한라산과 백록담의 절경에 상투적이고 정치적인 기술을 한 반면, 유배인들의 시는 힘차고 기상이 남다르다. 추사의 경우에서 보듯, 시나 문장은 쇠가 담금질해야 강해지듯 고통을 거쳐야 빼어난 글이 나오는 것 같다. 마치 4면의 바닷바람을 견디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 지혜로운 제주 선인들처럼.

제주에서 돌아간 이후 임관주는 1782년(정조 6) 시폐(時弊)를 상소하자 탄핵을 받아 흑산도로 다시 유배되었다가 2년 후에 풀려나기도 했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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