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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홍천 9景 으뜸인 팔봉산 가는길…가슴 아픈 사연 지니고 세워져

1982년 홍천 팔봉교 개통식

 

세종실록 전국 25개 명산 선정·산림청 100대 산에 꼽히기도
다리 건립 이전까지 홍천강 건널 유일한 교통수단 나룻배뿐
개통 1년 전인 1981년 배 뒤집혀 마을 주민 8명 운명 달리해

 

홍천 팔봉산 등산로는 8개 봉우리를 따라 지형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며 만들어져 등산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이 산은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1429년)에 따르면 예조에서 전국의 영험한 곳에서 국가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건의하는데 전국의 25개 명산과 함께 선정됐다. 또 2002년 산림청에서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100대 명산을 선정, 공포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곳이다.

홍천군은 지역 내 대표적 관광지를 9경으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팔봉산은 가장 먼저 언급되는 제1경이며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상봉약수도 홍천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4월은 조금씩 농도를 달리하는 연초록 나뭇잎이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봄의 시간이다. 가장 활동하기 좋은 계절을 맞아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팔봉산 유원지를 찾기 위해 팔봉교를 지난다. 지금은 다리를 이용해 자동차로 쉽게 건너가지만 1980년대만 해도 홍천강(화양강)을 건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나룻배였다.

다리가 세워지기까지는 주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춘천시 남산면 광판장은 2일, 7일 열리는 장으로 팔봉산 주변의 마을 주민들의 의식주를 책임져 왔다. 1981년 5월12일, 홍천군 서면 어유포리, 팔봉리 주민들은 팔봉초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소풍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일손을 접고 광판장을 보러 나왔다. 김밥 재료와 새 옷도 장만하는 사이 어느새 해가 중천을 넘어 팔봉산 쪽으로 향해 기울었다.

소풍을 앞두고 열린 장이라 평소보다 많은 주민이 나룻배에 몸과 짐을 실었다. 20여명 탄 나룻배는 강 중간 지점에서 뒤집혀 타고 있던 8명의 주민이 운명을 달리했다.

1981년 5월13일자 강원일보 사회면은 그날의 참사를 기록했다.

당시 강원도 내 나룻배 사고는 지금의 교통사고만큼 빈번하게 일어났다. 1970년 11월5일 춘천 의암호 금산2호 전복으로 29명이 사망했고, 1974년 4월19일 평창강에서 하교하던 안미국교 어린이 9명이 희생됐다. 또한 1975년 정선 신동면 운치2리에서 2명의 주민과 같은 해 8월13일 춘천 서면 월송리에서도 주민 희생이 잇따랐다.

사진은 사건 1년 뒤 1982년 5월12일 다리 준공식에 참가한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고 이후 1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희생자 가족들의 표정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갓을 쓴 마을 어르신을 선두로 주민들이 다리 개통식에 참가하고 있다. 팔봉교는 1990년 11월 착공돼 1992년 2월29일 두 번째로 만들어져 마을 주민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김남덕기자 kim67@kwnews.co.kr

¨나룻배가 뒤집혀 장에 갔다 오던 한 마을 주민 8명이 익사했다. 12일 오후 4시10분께 홍천군 서면 어유포리 앞 화양강에서 20명이 탄 나룻배가 뒤집혀 타고 있던 팔봉초교 교사 윤용기씨(41) 등 8명이 익사, 윤씨 등 3명의 시체를 인양하고 홍천군 서면 팔봉리 이부선씨(36) 등 5명의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변을 당한 사람들은 팔봉리 주민들로 춘성군 남면 광판리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유포리에서 팔봉리로 가는 이 나룻배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는 사공인 나판동씨(41)가 정원 10명의 길이 8m 폭 2m의 나룻배에 19명을 태우고 길 양쪽에 연결된 도선줄을 잡아 당기면서 폭 60m의 강을 건너다 강 중간 지점에서 도선 줄을 놓쳐 배가 강풍과 급류에 내려가자 승객들이 당황, 배 앞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뱃머리가 돌아서며 가라앉아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화양강은 지난 9, 10일 이틀간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 물살이 셌기 때문에 희생자가 많았다. 사고가 나자 박원기 홍천군수와 이제천 홍천서장의 지휘로 경찰, 주민 등 180여명이 구조활동을 벌였으나 윤 교사 등 3명의 시체만 건졌을 뿐 나머지 5명은 13일 오전 7시 현재까지 찾지 못했으며 경찰은 물살이 세 실종자들이 모두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나룻배는 3년 전에 건조된 팔봉리 마을배로 노를 저어 배를 건너지 않고 양쪽 강변에 로프를 매고 도르레를 이용, 배를 건너다 30m 지점에서 로프에 매여진 뱃머리가 물속에 잠겨 일어났다. 사고 지점은 팔봉산 유원지로 10일 내린 비로 수심이 1.5m(강폭 60m)밖에 되지 않지만 급류 지점이었기 때문에 희생자가 늘어났다.』

-강원일보 1981년 5월13일자 사회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