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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고향 잃었지만 꿈은 잃지 않아, 한국 배우며 새 꿈 키워요”

[광주 고려인마을 우크라 난민 한글·한국문화 교육 현장 가보니]
난민 자녀 등 21명 한글 수업
피란민 슬픔 딛고 배움 열정
“IT 개발자 꿈 이루고 싶어요”
도움 준 모든 사람들에 감사

 

“러시아 침공에 고향을 떠나왔어도 저는 꿈을 잃지 않았어요. 얼른 한국 말, 한글 배워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프로그래밍 공부도 열심히 해 보란듯이 IT(정보통신) 개발자가 되고 싶어요.”

지난 15일 오후 3시께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꼭 학교 교실처럼 생긴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에서 한글 수업을 듣던 아들 올렉산(16·Oleksan Vartapetian)군의 당찬 포부를 듣자 어머니 루이자(55·Kulishova Luiza)씨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근 고려인마을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 자녀와 고려인을 위한 ‘한글 교육’이 한창이다.

이 수업은 본래 한국말이 서툰 고려인들의 한국 적응을 앞당길 수 있도록 만든 수업이지만, 최근 고려인마을에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늘자 학령기 자녀를 위한 ‘한국사회 적응교육’으로 범위를 넓혔다고 한다.

이날도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는 난민 자녀 7명을 포함한 21명의 학생이 모여 한글 수업을 들었다. 7~16세 초·중·고교생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세종대왕’을 바탕으로 한글과 한국(조선)의 역사를 배웠다. 교사 박 빅토리아(Pak Victoria)씨의 지시에 따라 또렷한 발음으로 ‘세종대왕’을 따라 읽고, 세종대왕 초상화를 직접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7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글 교육을 시작해 ‘기역’ ‘니은’ ‘디귿’을 읽고 쓰며 기초를 익히고 있다.
 

슬픈 표정의 얼굴에서 드러나듯 이곳에서 만난 난민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을 안고 광주로 왔다.

 

 

루이자씨가 전쟁에 휘말려 피란길에 오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타지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인 루이자씨는 지난 1991년 소련 분리 독립 여파로 고향에서 내전이 터지자 우크라이나로 피신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니콜라예프에서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번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폭격을 피해 폴란드로 피신한 루이자씨 모자는 고려인마을과 인연을 맺었던 쌍둥이 딸의 제안으로 지난 3월 28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루이자씨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폭탄이 떨어지면서 한순간에 쑥대밭이 됐다. 말로 표현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잠시 흐느꼈다.

아들 올렉산군 역시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지만 꿈을 이루려는 의지는 대단해보였다. 올렉산군은 다리에 장애가 있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지만 매일같이 한글·한국 문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올렉산군은 “힘든 때지만, 광주에서 배움을 계속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한국서 IT 개발자의 꿈을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에서 한글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5일 몰도바를 통해 입국한 김 나탈리아(Kim Nataliia)씨의 딸 김 알비나(Kim Albina)양, 아들 김 막심(Kim Maksym)군도 수업을 듣고 싶다고 18일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를 찾아왔다.

나탈리아씨는 “한국에서 잠깐 살든, 정착하든 한글과 한국어는 무조건 배워야 한다”며 “아이들이 한국에 잘 적응해서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많은 도움을 준 고려인마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빅토리아 교사도 “대부분 난민들이 자녀와 함께 이곳에 왔다. 난민 자녀들이 엄마 손을 꼭 붙잡고 하나둘씩 한글수업을 들으러 온다”며 “함께 간식 타임도 갖고, 같이 놀이도 하면서 한국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침공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난민과 고려인 동포를 위해 항공권과 임대보증금 200만원, 임대료 2개월 분을 지원하고 있다. 18일까지 난민 117명이 광주 땅을 밟았으며, 493명이 항공권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