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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단독] "9명에 생명 주고 하늘의 별이 된 내 딸, 대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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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뇌사’ 장기기증, 故 김채연 씨 모친 최경순 씨

 

 

 지난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부산시와 한국장기기증협회 주최로 열린 ‘힐링의 밤’. 뇌사장기기증자 유족을 초청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기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딸의 이름을 부른 뒤 어떤 선행을 남겼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경순 씨는 지그시 눈을 감고 딸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그러곤 나지막이 혼잣말로 딸을 불렀다. "채연아…."

 

지난해 9월 태풍 속 사고

4.4m 절벽 아래로 추락

22살 나이로 세상과 이별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

장기기증 서약서도 보관

피부 조직도 주고 떠나

이식 수혜자 ‘부산 최다’

“딸도 흔쾌히 승낙했을 것

생명 나눔 동참 늘었으면…”

 

 지난해 9월 3일 태풍 ‘하이선’ 탓에 많은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었다. 북구 제2만덕터널을 빠져나오던 김채연 씨의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다. 하필 가드레일이 설치되지 않은 좁은 공간으로 빠져 차량은 4.4m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채연 씨는 뇌사판정을 받았다. 22살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워야 할 나이였다. 지금은 가드레일 설치가 미흡했다는 내용으로, 북구청과의 행정소송도 진행 중이다.

 

 최 씨는 “무슨 말로 그때 일을 설명하겠느냐”며 “그렇게 해맑던 딸이 누워 있다는 게,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애초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

 

 병원에서 소생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을 하면서 장기기증에 대해 언급했다. 처음엔 장기기증이라는 단어가 죽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무섭게 들렸다. 그러다 채연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를 가족들과 고민했다.

 

 딸은 참 밝은 아이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 뒤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구김 없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일을 좋아했고 동료들과도 살갑게 지냈다. 그런 딸이라면 “괜찮아, 엄마. 좋은 일을 하는 건데…”라며 승낙했을 것 같았다. 언젠가 TV에서 장기기증 프로를 보며, “저런 일 있으면 나도 기증할래”라고 했던 것도 떠올랐다. 뇌사 판정 뒤 일주일 만에 자가 호흡마저 어려워지자, 가족들은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채연 씨는 9명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별이 되었다. 각막이나 콩팥 같은 장기 외에도 피부조직 등을 화상 환자들에게 이식해 준 것을 포함하면, 수혜자는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부산 장기기증 역사에서 가장 많은 수다. 아름다운 일이었지만, 가족은 만감이 교차했다. 최 씨는 “좋은 일인 건 알지만, 수술실 밖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며 “기증으로 채연이가 너무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딸에게 가혹한 일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즈음 딸의 책상에서 장기기증 서약서를 찾았다. 어느 행사장에서 받아온 서약서를 이름까지 써 놓고 고이 간직해 온 것이다. 늦게 발견된 서약서가 가족의 결정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딸의 메시지 같기도 했다.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엄마는 딸을 닮은 이가 지날 때 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최 씨는 “너무 닮은 사람이 있으면, 어쩌면 채연이의 장기를 받아서 닮은 것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본다”고 말했다. 그런 날이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채연이를 통해 생명을 얻은 이들을 떠올려 본다. 채연이 같이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의지하는 엄마일 수도 있다.

 

 요즘 최 씨는 한국장기기증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장기기증 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딸의 장기들이 생명을 살리면서 여전히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짧은 생이었지만 많은 이에게 생명과 행복을 나눠준 딸이 대견하다”며 “너무 예뻤던 채연이의 이야기가 기억돼 많은 이들이 생명 나눔에 동참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