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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세조의 전설이 깃든 오대산 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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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살린 '치유의 원찰'
문수보살의 은혜…김종서 손자와 혼인 후 떠난 딸 찾아 사찰 간 세조
개울에서 목욕 즐기다 등 밀어준 동자승 덕분 피부병 완치
목숨 살린 고양이…문수전 들어가려는 왕 앞 막아 세워, 수상히 여긴 호위병 별당 수색하니
불단 밑에 숨은 자객발견 모두 척살

 

휘어지고 굽어진 산길 가장자리로 개옻나무가 검붉게 자지러진다. 오른쪽 둔덕 밑 개울로는 심산유곡을 온몸으로 내달린 벽계수가 청아한 소리를 내지르며 아래쪽으로, 아래쪽으로 굴러서 흘러내린다. 고개를 들자 앙상하게 변한 나뭇가지를 스쳐서 내려앉는 볕뉘가 꿈결처럼 따사롭다. 산발치에 마련된 산책로에는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시시각각으로 분주하다. 분주한 발걸음만큼이나 떨어지는 것도 서러워라! 가만있는 나는 왜 밟느냐고 단풍들의 아우성이 조용한 산골짝에 바스락바스락 대단하다. 어이어이 오르는 이 길 끝에는 오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한편으로 상원사가 있다.

 

 

◆산중에 5개의 암자를 두었다는 오대산

 

오대산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성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당시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들여와 5대 적멸보궁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5대 적멸보궁이라 함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와 오대산 상원사를 통칭한 것이다. 오대산이라 산명은 산중에 5개의 암자를 두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오대라 함은 동대(관세음보살), 서대(대세지보살), 남대(지장보살), 북대(미륵보살) 중대(사자암으로 비로자나불)등 다섯 암자를 말한다.

 

산을 오르는 길은 대체로 완만하다. 길의 끄트머리에서 오른편으로 꺾어들자 산 위쪽을 향해서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부터 1Km 남짓한 거리에 적멸보궁이 있다. 중대 사자암을 거쳐 한참을 올라 입이 말라올 때 쯤 '용안수'라는 음수대가 보인다.

 

적멸보궁은 '용안수'에서 금방이다. 용안수를 지나 약 1.5Km여를 내쳐 오르면 해발 1,563m 비로봉이다. 적멸보궁은 비로봉을 오르는 길에서 왼편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된다. 스님의 염불소리는 산길을 오르는 내내 길 가장자리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던 것처럼 법당에서도 여전하다. 법당 앞으로 줄지어 늘어선 연등을 보건데 과거의 기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다람쥐가 더 이상 스님과 친구하여 놀아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조선 세조의 원찰,상원사

 

적멸보궁을 돌아 뒤편으로 돌아들자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는 나지막한 봉분이 나타난다. 적멸보궁에서 사리의 친견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불가능이다. 이는 나지막한 봉분 그 어디엔가 부처님진신사리가 있기는 있으되 찾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기록으로 존재할 뿐이다. 적멸보궁을 둘러본 뒤 숨도 고를 겸 나무토막 의자에 걸터앉아 쉬는데 보살님께서 법당 부처님께 올렸다며 서리태가 듬성듬성 섞인 떡을 음복이라며 나눠 주신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오던 차에 허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뒤돌아 상원사로 향한다. 상원사는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고 넓었다. 문수전 안에서는 휴일을 맞아 몰려드는 불자들을 위해 불경을 외는 스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카랑카랑하다. 상원사는 조선 세조(1417~1468)의 원찰이다. 고려 때와는 달리 숭유억불정책을 강하게 펼친 조선 초기에 왕실에서 사찰을 찾았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것도 왕명을 받드는 도승지나 금부도사가 아닌 왕이 직접 찾았다는 점이 그렇다. 여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세조,세희공주를 찾아 상원사를 찾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강원도 영월 땅 천령포에 유배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사약까지 내린다. 왕권을 잡기 위해 한명회 등과 계유정란을 일으켜 반대파를 가차 없이 처단했다. 이때 4군 6진을 건설하는 등 여진족의 야인을 몰아내어 북방의 안정을 꽤한 김종서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으킨 무지막지한 피바람 속에 생의 환멸을 느낀 세희공주가 궁을 벗어난다.

 

기록에 의하면 궁을 벗어난 공주는 김종서의 손자와 부부지연을 맺고 슬하에 자식까지 둔다. 하지만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비밀이란 없다. 비밀이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듯이 행적이 노출된 공주는 다시 길을 나선다. 남녀의 애절하고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는 야사집인 금계필단에 실려 있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이는 아버지인 세조가 김종서의 일가를 몰살한 관계로 그의 손자와는 원수지간이다. 공주는 길 끝에서 상원사에 몸을 의탁한다. 그런데 공주의 행적을 감지한 세조가 상원사를 찾는다.

 

세조가 상원사 앞개울에서 목욕을 한 것으로 보아 여름철이었던 모양이다. 가을철 풀숲에 뒤덮인 개울은 수량이 그리 많아 보이지가 않는다. 세조가 땀에 찌든 의관을 벗고 목욕을 즐기는데 등 뒤로부터 인기척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사미승으로 보이는 동자승이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등을 밀고 있다. 세조가 말하기를 "어디 가서 임금의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하고 당부를 하자 동자승은 "임금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 줬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라고 답하며 홀연히 사라진다.

 

 

 

이날 이후 세조는 그 지독한 피부병이 완치 된다. 세조는 그때 만난 동자승을 나무에 조각을 하고 전신을 황금으로 장식하니 국보 제 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이다. 세조가 의관을 벗어 놓았던 자리를 '관대걸이'라 하여 후대에 돌로써 표지석을 만들었다.

 

세조가 문수전으로 들어가려는데 고양이가 앞을 막아 옷자락을 문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호위병들이 법당 안을 수색하여 불단 밑에 잠복한 자객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척살, 세조는 목숨을 건진다. 고양이로 인해 목숨을 건진 세조는 축대 아래에 고양이 석상을 세워 갸륵한 뜻을 세기고 상원사 일대의 전답을 하사하니 묘전이다.

 

 

◆안동루문에서 옮겨 온 상원사 동종

 

상원사에는 국보 제 221호 외에도 국보 제 36호 상원사 동종이 있다. 용뉴 좌우에 오목새김을 하였다. 한편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루문(安東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예종 1) 국명에 의하여 현 위치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동종은 종구에 작은 균열이 생겨 수리를 거쳐 보호 중이므로 옆에 복제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종이 안동 땅으로부터 옮겨질 당시 고갯마루에서 서럽게 울었다. 이에 사람들은 동종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는 설움이라 여겨 유두(乳頭:범종(梵鐘)의 유곽(乳廓)안에 볼록 솟아 있는 9개의 꼭지)하나를 떼서 남긴다.

 

한층 짧아진 햇살이 그림자를 끌기 시작한다. 상원사가 손바닥 뒤 짚듯 하는 단풍잎을 빌어 저만치서 배웅이다. 세조가 마음 한 조각을 남겨놓은 듯 고심이 깊어 보이는 사찰이다. 나무에 불상을 조각하여 금칠을 하고 전답을 내린다. 대소신료들의 엄청난 반대에 직면이다. 숭유억불의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상소가 빗발친다.

 

왕명을 거두어 달라고 벌 떼처럼 일어나는 신하들을 잠재워야 한다. 그러기에는 그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광대들:풍문 조작단'이란 영화에서 세조 때에 일어난 기이한 설화나 전설들은 대부분 조작이라 했다. 정통성을 잃은 왕권에 대한 명분 쌓기라 했다. 진실여부를 떠나 세조 또한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모퉁이를 돌자 상원사가 산영 속으로 슬며시 자취를 사린다. 권력과 야망을 위해 딸의 행복을 빼앗은 아버지, 아버지로써 세조는 이쯤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군주를 떠나 사랑하는 딸을 남겨둔 마음에 눈시울 정도는 황혼이 내려앉아 붉었을지도 모른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선임기자 lwonss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