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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가다… 철원·포천·연천·파주 여행

화산이 빚고 역사가 만든 강

 

한탄강과 임진강은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따라서 한반도의 중앙을 동서로 흐른다. 두 강줄기를 따라 봄이 더디 오는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연천·파주 일대를 다녀왔다. 신생대에서 판문점선언 이후까지, 자연이 빚고 역사가 남긴 빼어나고 때로 슬픈 비경이 빼곡한 여정이다.

 

두 강의 지금 모습은 27만 년 전에 시작됐다. 강원도 평강의 오리산 화산폭발로 분출한 묽은 용암은 느린 속도로 130km나 흘러 평강 북방의 추가령과 경기도 연천의 전곡 고랑포 사이의 낮은 골짜기를 메웠다. 현무암 절벽과 주상절리, 그리고 비옥한 곡창지대 철원대평야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탄강을 지나는 네 가지 방법

 

한탄강은 북한의 평강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강원도 철원에서 합류하고 경기도 포천을 지나 연천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길이 130km, 평균 하폭 60m의 큰 강이다. 용암지대의 영향으로 물이 최대 30m나 되는 수직 계곡 아래로 푹 꺼져있다. 강물이 철원-김화-평강에서 이루는 삼각극점이 바로 한국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다.

 

한탄강을 지나는 첫 장면으로는 금강산전기철도가 좋겠다. 금강산전기철도는 일제가 자원 수탈을 위해 1921년부터 10년에 걸쳐 만들었다. 철원역에서 내금강까지 총 116.6km, 4시간 반 거리를 매일 8회 운행했다. 쌀 한 가마 값 요금에도 1936년 연간 15만 4000명이 이용했다. 철원 정연리 한탄강 계곡에 남은 전철 교량은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구역의 경계) 내에 있어서 출입 승인과 군 검문을 거쳐야 건널 수 있다.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라고 적힌 교량 아래로는 우뚝 선 현무암 수직절벽이 한탄강을 병풍처럼 휘감아돈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도 남긴 정자연이다. 반대편 백골부대 멸공OP 방향으로는 사진 촬영도 금지되는 삼엄한 곳이 되었지만 시인묵객을 불러 모았던 절경은 여전하다.

 

철원 민통선 북쪽 민북마을은 2018년 판문점선언과 남북군사합의 이후 안보관광 붐으로 활기가 돌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대부분 관광이 중단됐다. 민북마을 이길리 주민이자 문화관광과 자연환경 해설사 김일남(60) 씨는 “아픔을 품고 있지만 때묻지않은 자연과 철새 낙원이 있는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다”면서 “사람이 반가운 이 곳에 더 많은 여행자가 찾아올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철원 9경 중 1경에 꼽히는 고석정은 한탄강 중간에 솟은 10m 높이의 거대한 바위 고석과 일대 현무암 협곡을 일컫는다. 신라 진평왕이 고석 맞은편에 지은 정자는 한국전쟁 때 소실돼 70년대 복원됐다. 정자 아래에서 모터보트를 타면 1억 년도 더 전에 지하에서 형성돼 화산과 침식 작용으로 모습을 드러낸 고석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숨어지냈다는 고석 중간의 자연 동굴도 보인다.

 

지난해 개통한 한탄강 은하수교에서는 또다른 철원 9경인 송대소를 비롯해 한탄강의 기암괴석과 주상절리를 아찔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철원의 상징인 두루미를 형상화한 높이 50m, 길이 180m, 폭 3m의 현수교 출렁다리로, 중심 구간 바닥에는 투명한 강화유리를 깔았다. 주상절리길로 연결돼 한탄강변 트레킹과 연계해도 좋다.

 

경기도 포천에도 한탄강의 화산 지형 명소들이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추노’, 최근 ‘달이 뜨는 강’까지 각종 사극에서 폭포 옆 동굴 장면으로 등장한 비둘기낭폭포도 그 중 하나다. 비둘기낭폭포 일대에는 한탄강 협곡을 옆에서 또는 아래서 보며 걷는 산책로가 조성돼있다. 높이 50m, 길이 200m, 폭 2m의 출렁다리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는 산책로의 하이라이트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등장하기도 했다.

 

 

■고구려군도 북한군도 건넌 임진강

 

임진강은 북한 마식령에서 발원해 경기도 연천에서 한탄강과 합류해 흐르다가 한강과 합쳐져서 황해로 간다. 254km 길이 강 유역 면적의 60% 이상이 북한 지역이다. 연천 임진강변 전곡리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구석기시대 주먹도끼 유물이 발견돼 인류사를 다시 썼다.

 

임진강은 삼국시대 때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위치와 더불어 강폭이 넓고 얕은 여울목으로 강을 건널 수 있는 지형적 특징 때문이다. 연천 고랑포의 호로고루는 고구려의 방어성곽으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대치한 ‘군사분계선’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전차부대가 개성~문산 대신 이 곳으로 도하해 국군과 격전을 벌였고, 1968년 김신조와 무장공비가 고랑포를 넘어 남하하기도 했다.

 

연천 숭의전은 임진강을 굽어보는 곳에 있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4왕과 고려조 충신 16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가 1971년 터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재건했다. 조선 정조 때 숭의전을 수리한 군수가 인근 잠두봉 절벽에 새긴 칠언전구에는 ‘강산이 어찌 흥망의 한을 알리요’라는 구절이 나온다.

 

 

옛 왕조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유적지가 있다. 경주 밖에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인 경순왕릉이 고랑포 나루터 뒤편 나지막한 구릉 위에 남방한계선 철책을 병풍삼아 누워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이미 분열된 나라의 왕위에 올라서 ‘죄없는 백성들의 간과 뇌를 땅에 바르도록 하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다’면서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겼다.

 

경순왕은 왕건의 장녀와 결혼했고, 나라를 넘기고도 43년을 더 살았다. 그의 운구가 경주를 향하자 신라 유민들은 장사진을 이뤄 따라나섰고, 고려조정은 ‘왕의 운구는 100리를 넘지 못한다’는 구실로 운구를 막았다. 그러나 사라진 왕조의 능은 잊혀지기도 좋았다. 무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한 번, 한국전쟁 후 또 한 번 유실될 뻔하다가 70년대 한 병사가 숲 속에 쓰러져있던 묘비를 발견하면서 사적으로 지정됐다. 비석에는 한국전쟁 당시 총탄 6발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시 시간을 돌려 여행의 마지막은 분단의 상징인 민통선을 하늘길로 지난다. 임진강 위를 지나가는 경기도 파주의 임진각평화곤돌라다. 파주시가 민자 유치로 만든 곤돌라는 준공 뒤에도 코로나19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한참을 멈춰있다가 지난해 9월 정식 개통했다. 임진각 하부 정류장에서 출발한 캐빈 26대가 길이 850m 구간 임진강을 가로질러서 비무장지대 내 캠프그리브스 일대에 도착한다.

 

 

■한탄강·임진강 여행팁

 

비무장지대(DMZ) 일대는 부산에서 가기가 쉽지 않다. 강원도 철원으로 바로 가려면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거나 김포공항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차로 1시간 50분가량을 더 가는 방법이 있다. 특히 철원은 민통선 북상으로 출입이 완화됐다고 해도 아직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 많다. 시설물관리사업소(033-450-5559)에서 관광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진 촬영과 출입 제한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다양한 걷기 길은 한탄강과 임진강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다. 주상절리 물윗길은 한탄강 부교를 걷는 겨울 트레킹 코스다. 올해는 이달 18일까지 운영된다. 탐방료가 있지만 철원 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포천에도 비둘기낭폭포와 하늘다리가 포함된 코스를 포함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있다. 경기도 4개 시·군을 잇는 평화누리길에는 연천 숭의전과 경순왕릉, 호로고루가 포함된 코스가 있다.

 

DMZ 전문여행사 새영남여행사(051-557-0133)는 한동안 중단된 DMZ 여행을 이달 방역 조치와 함께 조심스럽게 재개했다. 부산에서 출발해 항공과 버스를 이용해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를 둘러보는 다양한 일정이 있다. 1박 2일 철원-포천-연천-파주 코스에는 철원의 북한 노동당사와 백마고지 전적비, 삼부연 폭포, 국보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이 있는 신라시대 사찰 도피안사도 포함된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