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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동래는 과연 역사의 땅” 신청사 부지서도 유적 확인

 

과연 동래는 역사의 땅임이 틀림없다. 동래구 신청사 건립 사업 부지(부산 동래구 복천동 381 옛 동래구청사 부지)에서 100~300년 전인 조선 후기~일제강점기의 많은 유구가 발견된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시공문화재연구원이 진행한 1~2차 발굴 조사를 통해 모두 4개 문화층에서 건물지 고래시설 우물 담장지 배수로 등 유구 총 97기가 확인됐다. 4개 문화층은 각기 18세기 전반, 18세기 중·후반, 19세기, 일제강점기 등으로 200여 년에 걸쳐 있다. 이 같은 발굴 현장은 지난 15일 2차 전문가 검토 회의가 열리면서 처음 공개됐다.

 

동래읍성 서문~암문 성벽 안쪽

조선 후기~일제강점기 유구 발굴

후기 동래읍성 관련 건물터 비롯

우물터·기와로 만든 배수로 확인

전문가 의견에 신청사 사업 달려


 

 

 

이번 발굴 조사는 초미의 관심사다. 유적·유구의 중요성에 따라 이곳에 지하 3층, 지상 8층의 동래구 신청사를 지을 수 있느냐, 못 짓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신청사를 지으면 유적과 유구를 파괴해야 하며, 신청사를 짓지 못하면 동래구 숙원 사업을 그르치면서 주변 상권에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간 3차례의 학술자문회의, 1차 전문가 검토 회의가 열렸으나 현장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날 현장 공개 후 2차 전문가 검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번 발굴 조사의 초점은 각 문화층에서 발굴된 건물지가 성곽과 어떤 관련성을 가졌으며,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2개 문화층에서 발굴된 건물지는 1731년 조선 영조 7년에 쌓은 ‘후기 동래읍성’과 관련된 건물터로 추정됐다. 발굴단은 “아래쪽 2개 문화층에서 확인된 3개의 건축 유구는 건물 규모나 땅을 고른 방식 등을 볼 때 일반 주거 시설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으나 “건축물 용도를 현재로선 확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길이 6.7~14m, 너비 6.5~9m의 건물은 정면 3~5칸, 측면 3~4칸 모습인데 불을 때는 고래시설 일체(아궁이 고래 배연부 등)가 아주 상세한 모습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건물터에서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의례를 행한 진단구(鎭壇具) 2곳도 확인됐다. 건물터 주변에서는 방형과 원형의 우물터 3개도 확인했는데 그 속에서는 옹기와 기와 조각이 발견됐다. 땅속에 파묻혀 있었던 250~300년 전 원형 우물 2개는 현재도 물이 차오르는 상태다. 이번 발굴에서는 암수 기와를 이용해 만든 배수로도 확인됐다.

 

1~2차에 걸쳐 총 2612㎡를 조사한 발굴 현장은 조선 후기 동래읍성 서문과 암문 사이 성벽 바로 안쪽이다. 성벽 기초는 2006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에서 확인돼 땅속에 원형 보존돼 있는 상태다. 이번에 드러난 유적과 성벽의 관련성을 살피기 위해 트렌치를 넣어 성벽 기초 일부도 노출시켰다.

일제강점기 동래 전통의 인문 공간은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부산의 역사적 정체성을 유린한 것이었다. 한강 이남에서 최고로 아름답다던 동래읍성 남문은 말할 것도 없이 1920년대 이후 읍치의 상징이던 관아 건물과 동래읍성 성벽도 남김없이 부서졌다. 성벽이 파괴된 그 흔적 위에 문화재에 제대로 된 신경을 쓸 수 없었던 시절, 옛 동래구청사(1963년 건립 추정)가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한번 자행된 일제의 치명적 파괴가 잘못된 역사를 누적시킨 셈이다.

 

전문가 검토 회의 결과는 조만간 나올 거라고 한다. 그 답이 ‘신청사 건립 사업을 계속 추진해도 무방하다’고 나올 때 역사 흔적은 어쩔 수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공사 추진’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부산 지역 사회와 전문가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무엇보다 부산 역사의 모태인 동래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시민 사회가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거 같다. 전통 동래를 파괴한 일제의 무도한 역사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계속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글·사진=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