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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언양 천주교 수용 시점은 신유박해 이후 아닌 1790년께”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이 210여 쪽의 〈기해 1839〉(사진)를 냈다. 기해박해 180주년이던 지난해에 개최한 전시의 도록이다. 도록에 실린 글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 후기 언양 지역의 초기 천주교 수용자들과 수용 형태’는 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바꿀 만한 내용을 품었다.

 

부산·경남에서 천주교 세례를 가장 먼저 받은 언양에 천주교가 들어온 건 1801년 신유박해 이후라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한 것은 언양 지역 엘리트들이 1790년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박해를 피해 내려온 천주교인에 의한 ‘피신 속 전파’가 아니라 지역 엘리트들의 10여 년 앞선 ‘능동적 수용’이라는 것이다.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는 “1801년 이전부터 언양 지역에 천주교가 수용되었음을 확인한 것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기해 1839’ 전시 도록 출간

손숙경 교수 기존 통설 뒤집어

향반·향리 ‘능동 수용’ 밝혀

 

이를 밝혀낸 이는 지역사 연구자인 손숙경 부산가톨릭대 교수다. 그는 문서와 구전의 분석을 통해 창녕 성씨, 해주 오씨, 경주 김씨 등 언양 지역 가문이 1790년께부터 천주교를 능동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밝혔다. 창녕 성씨 가문에서는 성처인, 성진탁(성처인의 7촌)과 그의 아들인 성철규가 중앙 노론과 남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3명 모두 순교함에 따라 그 신앙은 대를 잇지 못했다.

 

해주 오씨와 경주 김씨 가문에서는 천주교 신앙이 대를 이었다. 해주 오씨 오한우와 그의 육촌 매제인 경주 김씨 김교희는 1790년께 천주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오한우의 경우 손자 오치문, 증손자 오상선으로, 김교희의 경우 아들 김상은, 손자와 손녀인 김영제와 김아가다로 신앙의 대를 이으면서 두 가문은 언양 지역 천주교 확산에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제와 김아가다는 순교했는데 부산교구 언양 살티 성지에 모셔져 있다.

 

이들은 언양의 향반 엘리트 가문(창녕 성씨)이었으며 대표적 향리 가문(해주 오씨, 경주 김씨)이었다. 하지만 이들 가문은 사회적 지위 상승 의지가 꺾이는 현실적 한계에 처해 있었다. 영의정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었으나 ‘재가’라는 딱지 때문에 성씨 후손은 관직에 나설 수 없었고, 오·김씨 가문은 향리직 소임에서 계속 배제됐던 것이다. 이런 실의 속에서 이들 가문이 천주교 수용으로 나아갔을 거라고 손 교수는 분석했다. 현재까지 추적에 의하면 언양의 고령 신씨 가문 신인표도 오한우와 김교희의 천주교 수용 이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을 거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중앙 관변 사료에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런 점이 지역사 규명의 심원하고 고단한 부분이며 발굴하고 타개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배선영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장은 “한국 천주교회가 성직자 없이 자발적으로 성립된 것처럼 언양 지역에서도 향반과 이족(吏族)들이 중앙과의 연결 속에서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며 “영남 지역사 연구가 한층 더 깊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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