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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의 비극…팀닥터 등 상습 폭행·폭언·체중 불었다고 ‘빵 고문’까지

 

전 소속팀으로부터 폭행·폭언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고 최숙현(22) 선수는 소속팀을 옮긴 뒤 내색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견뎌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 선수는 지난해 12월 경주시청 실업팀과의 계약을 끝내고, 올해 1월 부산시 체육회로 소속을 옮겼다. 전 소속팀에서 폭행·폭언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부산에 온 뒤 동료들과 웃으며 장난을 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여왔다. 최 선수를 스카우트해 온 박찬호 감독은 전 소속팀과의 갈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

 

올 1월 부산 이적 故 최숙현 선수

전 소속팀서 가혹행위 시달려

녹취·일기장 모아 고소했지만

처벌은커녕 돌아온 건 ‘깊은 절망’

극단 선택 당일에도 체육회와 통화

 

유족 등에 따르면, 최 선수는 경주시청 팀에 입단한 2017년부터 가족들에게 가혹 행위를 알렸다. 3개월가량 휴식을 가진 최 선수는 가족의 설득으로 다시 팀에 복귀해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2018년 또다시 1년 동안 운동을 그만뒀다. 2019년 감독의 회유로 다시 경주시청팀으로 돌아갔으나, 2019년 2월께부터 폭언과 폭행은 다시 당했다.

 

견디다 못한 최 선수는 녹취 등을 통해 증거를 남겼다. 2019년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음된 녹취록에는 팀닥터의 폭언과 폭행으로 추정되는 음성이 담겼다. 팀닥터는 “너는 매일 맞아야 돼” 등 모욕적 말과 함께 20분가량 최 선수를 폭행했다. 녹음 속 최 선수는 겁에 질린 듯, 팀닥터의 폭언과 폭행에 저항하지 못했다.

 

최 선수가 2019년 쓴 일기장에도 고통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일기장에는 “그만 좀 괴롭히라고 소리치고 싶다. 내가 니들한테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길래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니”라는 내용 등 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 선수의 동료들은 과거부터 상습적인 체벌과 괴롭힘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체중 몇 백g이 불었다는 이유로,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빵을 죽을 때까지 먹게 해주겠다”며 빵 20만 원어치를 사와 ‘다 먹을때까지 잠 못 잔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또 최 선수가 살을 빼지 못할 때마다 3일씩 굶기는 가혹행위를 일삼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산으로 팀을 옮기면서 직접적인 폭력과 폭언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고통은 이어졌다. 이들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최 선수는 부모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올해 3월 대구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녹취록과 일기장 등 명확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경찰 수사는 더디 진행됐고, 최 선수와 증인들의 심적 부담은 점점 커졌다. 가족들은 수사 결과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올 4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진정을 했지만 이곳에서도 진전이 없었다.

 

경찰은 올 5월 말 감독을 사기와 폭행 혐의로, 나머지 가해자 3명을 폭행 혐의로 검찰에 넘겼지만, 최 선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불안에 시달렸다. 극단적 선택을 한 당일도, 가해자들이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벌금형에 그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답답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인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정한 수사와 관계 기관의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철저한 대책을 주문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을 신고한 날이 4월 8일이었는데도 제대로 조치되지 않아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스포츠 인권과 관련해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대책을 지시했다.

 

경주시체육회도 같은 날 인사위원회를 열고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의 직무를 정지했다. 하지만, 최 선수 폭행 의혹을 받는 선수 2명은 폭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해 당장 징계하지 않았다. 폭행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팀닥터는 선수단 소속이 아니어서 인사위원회 청문 대상에서 빠졌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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