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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사진 도용됐다” 트위터 메시지 클릭 순간 악몽이 시작됐다

‘온라인 성 착취’ 피해 여고생

 

“이틀 내내 ‘알몸 영상을 보내라’고 협박 전화가 걸려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경기도에 거주하는 여고생 A(18) 양은 미성년자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이른바 ‘n번방 사건’의 뉴스를 보자 다리가 떨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2년 전 겪었던 악몽과 같았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철없는 호기심에 ‘일탈계’ 운영

‘도용’ 확인하려다 계정 해킹당해

“알몸 영상 안 보내면 신상 유포”

‘n번방’ 수법과 같은 집요한 협박

“2년 전 공포·악몽 아직도 생생

철저한 수사로 가해자 엄벌해야”

 

2018년 10월 A 양은 트위터로 ‘일탈계(성적인 사진 등을 올리는 익명 계정)’ 운영을 시작했다. 팔로어만 2000명을 넘었다. 그는 “철없이 호기심에서 일탈계를 운영했다. 그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탈계’는 A 양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2018년 12월 자신을 여성이라고 밝힌 한 트위터 유저가 A 양에게 ‘당신 사진이 도용됐으니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놀란 A 양이 링크를 클릭하자 트위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작성하는 칸이 떴고 A 양은 의심 없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남겼다. 그러나 그 곳엔 트위터 유저가 알려 준 사진 도용 페이지 같은 건 없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A 양에게 의문의 메시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트위터 일탈계하는 000(A 양 실명) 씨?’라는 내용과 함께 A 양의 주민등록번호와 얼굴 사진, 부모와 지인의 전화번호까지 전송됐다. 그제서야 A 양은 자신이 성급하게 남긴 비밀번호 때문에 트위터 계정이 해킹당한 것을 눈치챘다.

그 뒤로 해킹범의 집요한 협박이 시작됐다. 번호를 숨긴 채 전화를 걸어 A 양에게 ‘신상을 유포하지 않을 테니 알몸 영상과 사진을 보내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제안을 거절하자 언성을 높여 가며 화를 내기도 했다. 20대 젊은 남성 목소리의 해킹범은 협박을 하는 와중에도 ‘경찰서를 가지 말 것’을 강조하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A 양이 당한 해킹 수법은 현재 경찰이 추적에 들어간 ‘n번방’ 운영자 ‘갓갓’이나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의 수법과 판박이다. 특히 ‘갓갓’은 주로 트위터 일탈계를 운영하던 미성년자를 성 착취 제물로 삼았다. A 양이 협박 받은 시점 역시 ‘n번방’이 성행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끔찍한 시간을 보내던 A 양은 결국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는 “영상을 보내지 않으면 일탈계에 올라온 알몸 사진을 부모님과 지인, 학교에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다. 이틀 동안 고민하다 부모님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경찰서로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의 태도는 기대 이하였다. A 양 가족이 찾아간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는 ‘해외 기업인 트위터 등은 수사 협조도 힘들어 범인 잡기가 쉽지 않다”며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수치심을 무릅쓰고 경찰을 찾아갔지만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 셈이다. A 양은 “당시에는 마지막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숨겨진 성 착취 협박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A 양은 두려운 마음에 사건을 덮기로 하고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다행히 신상은 유포되지 않았으나, 해킹된 A 양의 계정은 디지털 성범죄 ‘아지트’로 전락했다. 해킹범은 팔로어가 많은 A 양의 계정에 10대 여성의 얼굴과 알몸 사진을 올리는 등 다른 피해자를 협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현재 A 양은 2년 전 협박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의 공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수법이 2년 전 그때와 비슷해 소름 끼쳤다. ‘그때 그 사람’이 ‘갓갓’이나 ‘박사’일 수도 있지 않겠냐. 이제라도 철저한 수사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